An Chi Hwan / 안치환

Antiwar songs by An Chi Hwan / 안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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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Chi Hwan è un noto artista coreano (del sud) nato il 2 febbraio 1966. Quella che segue è la sua biografia completa, ahimé e ahinoi, in coreano, ripresa da: questa pagina. Altro non s'è potuto fare...

1980년대 '새벽','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배출한 당대 최고의 민중가수 안치환, 1993년 3집을 내기 전까지 그는 이렇게 불리웠다. 80년대 중,후반의 대표적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잠들지 않는 남도','철의 노동자'등은 '장영준'이란 가명을 썼던 그가 만들고 직접 불렀던 노래들이다. 1995년 7월에 4집을 출반하면서 민중가요를 탈피, 노래꾼으로서 과감히 변신한 그는 '변절'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였으나 시대에 적응하는 그의 당당함에 비난은 곧 수그러들었다.

1984년 연세대 재학시절 교내 중앙노래패 '울림터'를 시작으로 '새벽','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거쳐가며 민중가요를 불렀던 그는 1989년에 솔로로 전향, 1990년 3월에 첫 독집앨범을 발표했다.

1991년에 2집앨범을 발표, 그 해 9월엔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친구 김광석과 가을 콘서트를 펼쳤다. 그는 민가협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와 노래의 밤',문익환 목사 구출공연,'나라사랑 청년회' 초청공연, 범민족대회 공연 등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민중의 외침을 노래하며 민중가수를 대표하게 된다.

1993년 7월에 발표한 3집 [Confession](고백)에서 그는 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자신의 고백을 담은 노래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좋은 노래로 대중과 동화되길 원했던 그는 록풍의 '자유'와 '소금인형'등을 선보이며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그는 2년후에 4집앨범을 발표했고 수록곡 '내가 만일'이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친숙한 대중가수로서 자리매김했다. 1997년 4월에는 포크앨범 [Nostalgia]를 발표했고, 이후 자신의 밴드 '자유'를 결성하여 '안치환과 자유'로 활동하고 있다.

1997년 12월에 발표한 5집 [Desire](갈망)에선 사랑과 통일을 희망이라는 말로 묶어 표현해 강렬한 록과 서정적인 포크송으로 담아냈다. 성공적인 그의 음악적 변신 후 서정성과 민중성이라는 두 경향이 갈등하는 모습이 보인다. 99년 7월, [ I Still Believe]라는 제목으로 6집앨범을 발표한 그는 2000년 4월 고(故)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로 꾸민 헌정앨범 [Remember]를 발표한다. 대학시절, 불법유통되던 김남주 시인의 옥중시를 읽으며 강렬한 영향을 받았고, 이후 '김남주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공연'을 줄곳 벌인 끝에 89년 여의도 여성100인회관에서 석방 환영공연을 하며 김시인을 처음 만났다. 90년부터 `다시 서는 봄'이란 제목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돌며 故 김남주 시인과 함께 다니며 많은 얘기를 나누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2001년 7월에 발표한 그의 7번째 정규앨범 [Good Luck]은 '노래활동 13년을 돌아보며 만든 자화상 같은 앨범'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80년대의 상징이던 저항과 낭만의 문화를 잃고 살아가는 386세대를 위로하는 권주가 - '위하여!'를 타이틀 곡으로 내세웠다.

안치환, 수년간 이어온 그의 라이브 무대에서 80년대 민중가수로서, 70년대를 이어가는 포크가수로서, 90년대 시대적 성향을 잘 읽어낸 록가수로서 2000년대에도 시들지않는 젊음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